나도 번역해 보았다./일본문학번역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

도로보네코 2011. 12. 12. 19:10

 

 

 

 

달려라 메로스를 번역해 보았다

 

달려라 메로스(走れメロス)

                                                                                                                                                         

 

  다자이 오사무
(사진출처: 네이버 인물정보)

     

메로스는 격노(激怒)했다. 반드시 저 간사하고 포학한 왕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결심했다. 메로스는 정치를 알지 못한다. 메로스는 마을의 목자다. 피리를 불고 양과 노닐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악함에 대해서는 남보다 배는 더 민감했다. 오늘, 날이 채 밝지도 않아 메로스는 마을을 출발했다. 들을 지나고 산을 넘어, 십리나 떨어진 이 시라크스 시(市)에 왔다. 메로스에게는 아비도 어미도 없다. 부인도 없다. 16세의 내성적인 여동생과 둘이 살고 있었다. 이 여동생은 마을의 어떤 한 성실한 목자를 가까운 시일에 신랑으로 맞이하게 된어 있었다.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메로스는 그러하기에 신부의 의상부터 축하연의 음식을 사러 먼 도시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선 그 물건들을 매입한 뒤 수도의 대로를 어슬렁 거렸다. 메로스는 죽마고우가 있었다. 세린티우스다. 지금은 이 시라크스 시에서 석공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를 이제 만나볼 생각이다.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기에 찾아가는 길이 설레었다. 가면서 메로스는 마을의 상황을 이상히 여겼다. 으슥하다. 벌써 해가 져 마을이 캄캄한 것은 당연하나, 하지만 뭐랄까 밤때문인 것만은 아닌, 도시 전체가 필요이상으로 적막했다. 느긋하기만 한 메로스도 점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길에서 만난 젊은이를 붙잡아 뭔 일이 있었는지, 2년 전 이 도시에 왔을 때, 밤이라도 모두가 노래를 불러대어 마을이 시끌벅적했지 않느냐고 물었다. 젊은이는 고개를 저으며 답하지 않았다. 잠시 걷자 노옹(老爺)을 만나 이번에는 좀 더 어조를 강하게 해서 물었다. 노옹은 답하지 않았다. 메로스는 양손으로 노옹의 몸을 흔들며 물어봤다. 노옹은 주위를 둘러보며 낮은 소리로 짧게 답했다.

“왕은 사람을 죽입니다.”

“어찌하여 죽이는 게요?”

“악의를 품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악의를 품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를 죽인 거요?”

“네. 처음에는 왕의 매제를. 그 뒤 자신의 자식을. 그리고 누이동생 분을. 그리고는 누이동생 분의 자제를. 그리고 나서는 황후님을. 그 다음에는 현신인 알레키스님을.”

“놀랍구나. 국왕은 미치광이인가?”

“아닙니다. 미치광이는 아닙니다. 사람을 믿지 못한다고 말합디다. 요즘은 신하의 마음도 의심하게 되어 조금이라도 권세가 있는 자들에게는 볼모를 바치라고 명했습니다. 어명을 거부하면 십자가에 걸려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오늘 6명이 죽었습니다.”

듣고 난 뒤 메로스는 격노했다. “어처구니없는 왕이다. 살려둘 수가 없구나.”

메로스는 단순한 남자였다. 물건을 짊어진 채, 어슬렁어슬렁 왕성에 들어갔다. 갑자기 그는 순찰을 돌던 경관에게 포박당했다. 조사해보니 메로스의 품속에서 비수가 나와 큰 소동이 되어버렸다. 메로스는 왕 앞에 끌려나왔다.

“이 단검으로 무엇을 할 작정이었는지 고하라!” 폭군 디오니스는 조용하게, 하지만 위엄을 지니고 추궁했다. 그 왕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미간의 주름은 마치 새겨져 있던 것처럼 깊었다.

“도시를 폭군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것이다.”라고 메로스는 주눅들지 않고 답했다.

“네가 말이냐?” “어찌할 수 없는 녀석이로구나. 너에게는 나의 고독을 알수 없다.”

“닥쳐라!”라고 메로스는 격분하여 반박했다. “사람의 마음을 의심하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워 할 악덕이다. 왕이 백성의 충성조차 의심하고 있다니.”

“나에게 의심이야말로 정당한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쳐준 것은 너희들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믿는 것이 못돼. 인간은 본디 사욕(私慾) 덩어리다. 믿어서는 안 된다.” 폭군은 말을 끝내면서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평화를 바라고 있다만.”

“무엇을 위한 평화냐?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이번에는 메로스가 비아냥거렸다. “죄없는 이를 죽이고 무엇이 평화냐!”

“닥쳐라. 천한 것이.” 왕은 얼굴을 들며 답했다. “입으로는 어떤 좋은 것이라도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인간의 저 깊은 속내가 뻔히 보인다. 네 녀석도 이제 책형에 처해 울면서 사죄한다 해도 소용없을 게야.”

“아아, 간악한 왕이다. 자만에 빠져있구나. 내가 확실히 죽을 각오를 하고 있거늘. 절대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 단지,”라고 말을 꺼내며, 메로스는 발밑으로 시선을 떨구고 잠깐 망설이다가 “단지 나에게 불쌍히 여긴다면 처형까지 3일간의 기한을 주시오. 단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남편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소. 3일 안에 나는 고향으로가 결혼식을 올리는 걸 보고 반드시 이리로 오겠소.”

“어리석은.”이라며 폭군은 쉰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 “말도 안 되는 거짓을 고하는구나. 놓아준 새가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소. 돌아오겠소.” 메로스는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나는 약속을 지킵니다. 나를 3일간만 유예를 해주시오. 여동생이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도 나를 믿지 못한다면야, 좋소이다. 이 도시에 세리눈티우스라는 석공이 있소이다. 내 둘도 없는 친우요. 그를 인질로 남겨두고 가겠소. 내가 도망가 3일째의 해질 무렵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친우를 교살(絞殺)하시오. 부탁이오. 그렇게 해주시오.”

그 말을 들은 왕은 잔악한 마음으로 살짝 웃었다. 주제넘은 소리를 하는구나.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거짓말쟁이에게 속아주는 척하며 놓아주는 것도 재미겠지. 그렇게 하여 인질이 된 남자를 3일째에 죽이는 것도 마음에 드는군. 인간은 이래서 믿을 수 없다며 내가 슬픈 얼굴로 그 인질이 된 남자를 책형(磔刑)에 처하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정직한 자라고 말하는 녀석들에게 한껏 보여주고 싶구나.

“부탁을 들어주마. 그 인질을 불러와도 좋다. 3일째에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너라. 늦는다면 그 인질을 반드시 죽이겠다. 늦게 오는 것이 좋을 게다. 너의 죄는 영원히 용서해주도록하지.”

“무엇을, 무엇을 말하는 게냐!”

“하하! 목숨이 소중하다면 늦게 오너라. 너의 마음은 알고 있다.”

메로스는 분해 발을 굴렀다.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게 되었다.

죽마고우인 세리눈티우스는 심야, 왕성으로 불려갔다. 폭군 디오니스의 면전에서 좋은 친구와 좋은 친구는 2년 만에 만났다. 메로스는 친구에게 모든 사정을 이야기했다. 세리눈티우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메로스는 꽉 끌어안았다. 친구와 친구 간에는 그것으로 족했다. 세리눈티우스는 포박 당하였다. 메로스는 곧 출발하였다. 초여름의 하늘은 별로 가득했다.

메로스는 그날 밤, 한잠도 안자고 십리의 길을 급히 서둘러서 마을에 도착했던 때는 해가 뜨는 오전, 해는 이미 높이 떠서 마을사람들이 오전에 들에 나와 일을 시작하고 있던 때였다. 메로스의 열여섯살 된 여동생도 오늘은 오라버니를 대신해 양들을 치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오라버니의 기진맥진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그리하여 시끄러울 정도로 오라버니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아무것도 아니다.” 메로스는 억지로 웃으려고 애썼다. “도시에 용무를 남겨두고 왔다. 곧바로 도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돼. 내일 너의 결혼식을 올리자꾸나. 빠를수록 좋겠지.”

여동생은 뺨을 불게 물들였다.

“기쁘느냐? 아름다운 옷도 사왔다. 자, 이제 가서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오너라. 결혼식은 내일이라고.”

메로스는 다시 비틀거리면서 걸어, 집으로 돌아가 신들의 제단을 장식하고, 축하연의 자리를 정리하자마자 침대에 엎드려 쓰러졌다. 숨도 안 쉴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눈을 뜬 것은 밤이었다. 메로스는 일어나서 곧바로 신랑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약간의 사정이 있어 결혼식을 내일 올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신랑인 양치기는 놀라 그건 안 됩니다. 우리는 아직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포도가 익는 계절까지는 기달려 달라고 답했다. 메로스는 기다릴 수가 없다네. 부디 내일 식을 올려주게라고 거듭 부탁했다. 양치기인 신랑도 완고했다. 좀처럼 승낙을 해주지 않았다. 해가 밝기 전까지 의논을 계속했고, 겨우 어떻게든 신랑을 어르고 달래서 설득했다. 결혼식은 한낮에 행해졌다. 신랑신부가 신들에게 선서가 끝났을 무렵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차축을 흘려보낼 듯 한 큰 비가 되었다. 축하연에 참석한 마을사람들은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제각각 기분을 끌어올려서 좁은 집이 몹시 찌는 것을 견디고, 밝게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쳤다. 메로스도 희색이 얼굴에 만연했다. 이때만은 왕과의 약속조차 잊어 버렸다. 축하연은 밤이 되어서 점점 흥이 극에 달하여 사람들은 밖에 폭우가 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메로스는 이처럼 한 평생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좋은 사람들과 평생 살아가고 싶다고 바랬지만, 자신의 몸조차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뜻대로 될 수 없는 일이었다. 메로스는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여 드디어 출발할 결심을 했다. 내일 일몰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 잠깐 한숨자고 난 뒤 곧 출발하자고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비도 적게 내릴 터였다. 조금이라도 더 집에서 미적거리며 머물고 싶었다. 아무리 메로스 같은 남자라도 역시 미련이라는 감정은 있었다. 오늘 밤 기쁨에 빠져 어안이 벙벙해있는 신부에게 가까이 다가가 “축하한다. 나는 피곤해졌으니, 이만 쉬고 싶구나. 내일 일어나면 곧바로 도시로 갈 것이다. 중요한 일이 있단다. 내가 없어도, 이제 너에게는 상냥한 남편이 있으니 절대로 슬픈 일은 없을 게다. 이 오라비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사람을 의심하는 일과 함께 거짓을 말하는 일이다. 너도 그것을 명심하려무나. 남편과의 관계에서 어떤 비밀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기까지다. 이 오라비는 아마도 훌륭한 남자이니 너도 그런 긍지를 가지고 있을게다.”

신부는 황홀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메로스는 그 뒤 신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준비가 서로 되어있지 않는 것은 서로가 같다네. 나의 집에도 보물이 있다면 여동생과 양 뿐이네. 다른 것은 없네. 이 모든 것을 주겠네. 또 하나라면 이 메로스의 처남이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주게.”

신랑은 손을 비비면서 부끄러워 했다. 메로스는 웃으며 마을사람들에게도 가벼운 인사를 하고 연회장을 벗어났다. 양우리에 들어가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이 떠진 것은 다음날 해뜰 무렵이었다. 메로스는 벌떡 일어나 아뿔싸, 늦잠을 자버린 건가? 아니 아직은 괜찮아. 이제부터라도 빨리 출발하면 약속 시간까지는 충분히 늦지 않는다. 오늘은 반드시 그 왕에게 사람의 신뢰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그리하여 웃으면서 처형대에 올라리라. 메로스는 유유히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비도 다소 약하게 내리게 되었다. 복장은 다 갖췄다. 이제 메로스는 으스대면서 양팔을 크게 흔들며, 빗속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나는 오늘밤, 죽는다. 죽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인질이 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왕의 간악하고 간사한 지혜를 쳐부수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 젊을 때 명예를 지키자. 잘 있거라. 고향이여. 젊은 메로스는 괴로웠다. 몇 차례나 멈춰 서고 싶었다. 안돼, 안돼하며 큰 소리를 질러 자신을 꾸짖으며 달렸다. 마을을 떠나 들을 가로질러, 숲을 해쳐 나와 이웃마을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비도 그치고 해는 높이 떠올랐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메로스는 이마에 땀을 주먹으로 닦으며, 여기까지 왔으니 늦지않아, 이제 고향에 대한 미련은 없다. 여동생 내외는 분명 좋은 부부가 되겠지. 나에게는 이제 아무 걱정도 없을 게다. 곧바로 왕성에 도착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지. 천천히 걸어가자고 느긋한 마음을 다시 가지게 되어 좋아하는 노래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렀다. 흔들거리며 이리를 걷고 삼리를 걸어 슬슬 반쯤 도달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메로스의 발을 잡아끌었다. 보라. 앞에 있는 강을. 어제의 폭우로 산의 수원지가 범람하여, 탁류가 하류로 도도히 모여 맹령한 기세로 다리를 파괴시켰다. 당당한 소리를 내며 격한 물길은 교각을 산산조각을 내고 도망친 것이다. 그는 망연히 서 있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다시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지만, 온데 간데 없이 나룻배는 남아있지 않고 물결만 쳐댔다. 지키는 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강은 점점 불어나 바다처럼 되었다. 메로스는 강가에 웅크리고 앉아 복받쳐 울면서 제우스에게 손을 내밀면서 애원했다. “아, 진정시켜주소서. 미쳐 날뛰는 물줄기를!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미 태양도 대낮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강이 진정되지 않으면, 왕성에 갈 수가 없다면, 저 훌륭한 친구가 저로 인해 죽게 됩니다.”

탁류는 메로스의 외침을 비웃듯이, 점점 격하게 미쳐 날뛰었다. 파도는 파도를 머금고, 소용돌이치며 철썩거렸다. 그러면서 시간은 시시각각 흘러갔다. 지금은 메로스도 각오를 다졌다. 헤엄쳐가는 것 이외엔 없다. 아아, 신들이시여, 굽어 살피소서! 탁류에도 지지 않는 사랑과 참된 위대한 힘을 지금이야말로 발휘해 보이겠다. 메로스는 첨벙 물 속으로 뛰어들어, 백 마리의 커다란 구렁이와 같이 미쳐 날뛰는 파도를 상대로 필사의 전쟁을 개시했다. 전신의 힘을 팔에 실어 몰려드는 소용돌이를 억지로 해치며, 이까짓 쯤이야 하며 헤쳐 나가는 모습은 성난 어린사자의 모습을 한 사람의 자손과도 같아 신도 가엽게 여겼는지, 이윽고 은총을 내려주었다. 물에 떠 밀려나면서도 훌륭하게 건너편 수목의 줄기를 붙잡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메로스는 말과 같이 크게 한번 몸을 털고는 곧 앞을 향해 달렸다. 잠깐이라도 헛되이 보낼 수 없다. 태양은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넘고 넘어 한숨 돌릴 때 쯤 갑자기 눈앞에 산적무리가 튀어나왔다.

“멈춰라”

“뭣 하는 것인가? 난 해가 지기 전까지 왕성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피켜라.”

“어딜! 놓아줄 성 싶으냐. 지니고 물건을 전부 놓아 둬라.”

“나에게는 목숨 이외엔 아무것도 없다. 이 하나 뿐인 목숨조차 지금 왕에게 주려한다.”

“그 목숨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왕의 명령으로, 여기서 숨어 나를 기다린 게로구나.”

산적들은 아무 말도 없이 일제히 곤봉을 휘둘렀다. 메로스는 가볍게 몸을 숙여 나는 새와 같이 가까이에 있던 이에게 덤벼들어 곤봉을 빼앗아 “안타깝지만 정의를 위해서다.”라며 맹렬한 일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세 명을 때려눕히고 남은 자가 기가 질린 틈을 타 냉큼 달려 고개를 내려갔다. 단번에 고개를 뛰어 내려갔지만 피곤했고, 때마침 오후의 작열하는 태양이 너무나 강하게 내리쬐어 메로스는 몇 번이고 할 것 없이 현기증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된다며 기운을 차리면서 비틀비틀 두서걸음을 걷고는 마침내 풀썩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일어 날 수가 없다. 하늘을 올려보며 통한의 눈물을 쏫아냈다. 아아, 아, 탁류를 헤엄쳐 나와, 세 명의 산적을 쓰러뜨리고 필사적으로 달려 여기까지 도달한 메로스여. 진정한 용자 메로스여. 지금 이곳에 지쳐 쓰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되다니 한심하구나. 사랑하는 친구는 너를 믿었을 뿐이건만, 이윽고 죽임을 당해야만 한다. 너는 기대를 져 버린 인간, 믿지 못할 희대의 인간, 이야말로 왕의 생각대로구나라며 자신을 채찍질해보지만 전신이 쇠약해져 이제는 애벌레만큼도 나아갈 수 없었다. 길가의 초원에 퍼져 자고 싶었다. 육신이 지치면 정신도 영향을 받는 법. 이제는 어찌되어도 좋다라는 말은 용자에게 걸맞지 않은 반항적인 근성이 마음 한 구석에서 자라났다. 나는 이렇게나 노력을 했다. 약속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도 똑똑히 보았듯이, 나는 온 힘을 쥐어 짜 냈다.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 달려 온 것이다. 나는 불신(不信)의 무리가 아니다. 아아,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심장을 끄집어내어 선 붉디붉은 심장을 눈 앞에 내보이고 싶구나. 사랑과 진실의 혈액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이 심장을 보여주고 싶구나. 그렇지만 나는 이 중요할 때에 정력도 끈기도 다해 버렸다. 나는 어찌할 수 없는 불행한 남자다. 나는 분명 조롱거리가 되겠지, 나의 가문 또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벗을 속였다. 중간에 쓰러졌다는 것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아아, 이젠, 어찌되든 상관없다. 이것이 나의 정해진 운명일지도 모fms다. 세리눈티우스여, 용서해주게. 그대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었다. 나도 그대를 속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진실로 좋은 친구사이였다. 단 한 번이라도 어두운 의혹의 구름이 서로의 가슴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지금조차 그대는 나를 의심 없이 기다리고 있겠지. 아아, 기다리고 있겠지. 고맙구나, 세리눈티우스. 잘도 나를 믿어주었구나. 이를 생각한다면 견딜 수가 없구나. 친구와 친구사이의 진실 됨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워 할 보석이기 때문이다. 세리눈티우스, 나는 달렸다. 그대를 속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믿어주게. 나는 서두르고 서둘러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격류를 돌파했다. 산적의 포위로부터도, 재빠르게 빠져나와 단숨에 언덕을 빠져나왔다. 나이기에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었어. 아아, 그 이상, 나에게 바라지 말게. 놓아주게. 어찌되든 상관없어. 나는 패배했다. 한심하군. 비웃어주게나. 왕은 나에게 조금 늦게 오게라고 귀엣말을 했네. 늦게 온다면 그대를 죽이고 나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지. 나는 왕의 비열함을 증오했네. 허나, 지금에 와서 보면 나는 왕이 말한 대로 되었네. 난, 늦게 가겠지. 왕은 지레짐작으로 나를 비웃으며,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풀어주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죽는 것보다 괴롭다네. 나는 영원한 배신자다. 지상 최대의 불명예스러운 인종이다. 세리눈티우스여, 나도 죽겠네. 그대와 함께 죽게 해주게. 그대만은 나를 믿어줄 것이 틀림없네. 아니, 그것조차 나의 혼자만의 착각일까? 아아, 차라리 악덕한 이로써 살아나갈까? 마을에는 나의 집도, 양도 있다. 여동생 부부가 설마 나를 마을 밖으로 내쫓지는 않을 게야. 정의라느니, 진실이라느니, 사랑이라느니, 다 생각해보면 하찮기 그지없다. 남을 죽이고 내가 산다. 그것이 인간세상의 정해진 법칙이 아니었던가? 아아, 이도저도 어리석구나. 나는 추한 배신자다. 어쟀든 마음대로 해야겠다. 이미 어쩔 수 없구나. -- 사지를 내 던지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귓가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고개를 들어, 숨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곧 발밑에 물이 흐르는 듯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보니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졸졸거리며 무언가를 작게 속삭이면서 맑은 샘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샘에 빨려 들어가듯 메로스는 몸을 구부렸다. 물을 두 손으로 떠서 한 모금 마셔보았다. 휴우 하고 한숨을 나오니, 꿈에서 눈이 떠진 느낌이었다. 걸을 수 있다. 가자. 육체의 피로가 회복됨과 함께 약간이지만 희망이 생겨났다.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희망. 내 몸을 죽이고, 명예를 지키는 희망을 말이다. 석양은 붉은 빛을 나무들의 잎에 비쳐 잎도 가지도 불타오르듯이 빛나고 있다. 일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나를, 믿고 있다. 조금도 의심치 않고, 조용히 믿어주는 자가 있다. 나는 신뢰받고 있다. 나의 목숨 따위, 문제가 아니다.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등의 듣기 좋은 말이나 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신뢰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단지 그뿐이다. 달려라! 메로스.

나는 신뢰받고 있다. 나는 신뢰받고 있다. 아까의, 그 악마의 속삭임은, 그건 꿈이다. 악몽이다. 잊어버려라. 오장육부가 지쳐있을 때는 불쑥 그런 악몽을 보는 법이다. 메로스, 너의 수치가 아니다. 역시, 너는 진정한 용자다. 다시 일어나 달릴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고맙다! 나는 정의의 사도로써 죽을 수 있게 되었다네. 아아, 해가 저문다. 거침없이 저문다. 기다려라. 제우스여.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직한 사내였다. 정직한 남자로서 죽게 하소서.

길가는 행인을 밀어내고, 뛰어오르며, 메로스는 검은 바람같이 달렸다. 들판에서 축하연을 하는 그 연회석 한 가운데를 빠져나와 축하연에 있는 사람들을 기겁시키고, 개를 발로 차며, 실개천을 뛰어 넘고, 조금씩 져가는 태양보다 10배나 더 빨리 달렸다. 한 무리의 여행자를 휙 하고 지나가려는 순간, 불길한 대화를 언뜻 들게 되었다. “지금쯤이면 그 남자도 책형에 처해졌을 게야.” 아아, 그 사내, 그 사내를 위해 나는, 지금 이처럼 달리고 있다. 그 사내를 죽게 하지는 않아. 서둘러라, 메로스. 늦어서는 안 된다. 사랑과 참됨의 힘을, 지금이야말로 알려줘야만 한다. 겉모습 따윈 어찌돼든 상관없다. 메로스는 지금, 거의 알몸이었다. 호흡도 잘 안되어, 두세 번 입으로 피를 토해냈다. 보인다. 저 멀리 조그마하게, 시라크스 시의 높은 누각이 보인다. 높은 누각은 석양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아아, 메로스님”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가 바람과 함께 들려왔다.

“누구냐?” 메로스는 달리면서 물었다.

“필로스라토스이옵니다. 당신의 친구인 세리눈티우스님의 제자이옵니다.”

그 젊은 석공도, 메로스의 뒤를 따라 달리면서 외쳤다. “이제 늦었사옵니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발걸음을 멈춰주십시오. 더 이상 그분을 도와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니.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딱 이제, 그분께서는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아아, 당신은 늦었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일찍 왔었더라면!”

“아니야, 아직 해는 지지 않았다.”

메로스는 가슴이 짓이기는 마음 때문에 크고 붉은 석양만을 바라보았다. 달리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멈춰주십시오. 달리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지금은 자신의 목숨만이 중요합니다. 그 분께서는 당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평온하셨습니다. 임금님께서 심하게 그분을 조롱하여도, 메로스는 온다고만 답하며, 강한 신념을 지니고 계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달리는 것이다. 믿어주고 있기에 달리는 것이다. 늦고 안 늦고의 문제가 아닌게다. 사람의 목숨이 문제가 아니다. 나는 뭐랄까, 더 두렵고 거대한 것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오너라! 필로스토라토스.”

“아아, 당신은 미친 겁니까? 그렇다면 죽을 힘을 다해 달리십시오. 어쩌면 늦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달리십시오.”

말해 무엇 한가. 아직 태양은 지지 않았다. 최후의 사력을 다하여, 메로스는 달렸다. 메로스의 머리는 텅 비었다. 무엇하나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까닭모를 거대한 힘에 이끌려 달렸다. 태양은 아늘아늘 지평선에 잠기며, 더욱이 최후의 한 조각 잔광(殘光)도 꺼지려고 할 때, 메로스는 질풍과 같이 형장으로 뛰쳐 들어갔다. 늦지 않았다.

“멈춰라.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메로스가 돌아왔다. 약속대로, 지금, 돌아왔다.” 라며 큰 소리로 현장의 군중들을 향해 외치려 했지만, 목이 메어 쉰 목소리만이 초라하게 나왔을 뿐, 군중, 한명이라도 그의 도착을 알지 못했다. 이미 책형에 쓸 기둥이 드높게 서 있었고, 포박당한 세리눈티우스는 서서히 끌어올려진다. 메로스는 이를 목격하고 최후의 기력, 좀 전, 탁류를 헤엄쳐 왔듯이 군중들을 강하게 헤치고, 헤쳤다.

“나다. 집행관! 죽임을 당하는 것은 나다. 메로스다. 그를 인질로 삼았던 내가, 여기 있다.” 라고, 잠긴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해 외치면서, 결국 책형대 위로 올라가 끌려 올라가는 친구의 두발을 잡아끌었다. 군중들은 술렁거렸다. 훌륭하다. 용서하라, 라며 입을 모아 떠들었다. 세리눈티우스의 포승줄은 풀어졌다.

“세리눈티우스” 메로스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나를 치게. 온 힘을 다해 뼘을 쳐주게. 나는, 도중에 한 번, 나쁜 꿈을 보았네. 그대가 만약 나를 때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와 포옹하는 자격조차 없게 된다네. 때리게.”

세리눈티우스는 전부 예상했다는 모습으로 수긍하며, 힘껏 형장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큰 소리가 나게 메로스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 때린 뒤 친근하게 웃었다.

“메로스, 나를 때려라. 내가 때렸듯이 쌔게 나의 뺨을 쳐라. 나는 이 삼 일 동안, 단 한번, 너를 조금 의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를 의심했다. 네가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끌어안을 수 없다.

메로스는 팔에 힘을 꽉 주어 세리눈티우스의 뺨을 때렸다.

“고맙다. 친구야.” 두 사람은 동시에 말을 하며, 꽉 끌어안으며, 그 뒤 기쁨의 눈물을 엉엉소리를 내며 울었다.

군중들 사이에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폭군 디오니스는 군중들의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조용히 두 사람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의 소원은 이뤄졌다. 너희들은, 나의 마음을 이겼노라. 신뢰란 결코 공허한 망상이 아니었다. 부디, 나도 친구가 되게 해주면 안되겠는가? 부디 나의 바람을 들어주어, 너희들의 친구 중 한명이 되길 바라네.”

군중들 사이에서 커다란 함성이 일었다.

“만세, 국왕 폐하 만세”

한 소녀가 주홍빛 망토를 메로스에게 바쳤다. 메로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한 친구는,

정신을 차리고 알려주었다.

“메로스, 너는, 알몸이잖나. 빨리 그 망토를 입는 게 좋겠네. 이 귀여운 소녀는 메로스의 나체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을, 참지 못할 정도로 분했던 게야.”

용자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오래된 전설과 쉴러의 시로부터)

번역: 독단자(kidkh1004@hanmail.net)

http://blog.daum.net/kidkh1004

본 작품은 저작권이 만료된 자료를 번역하였습니다.

직역, 의역, 오역의 삼위일체를 통하여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이기에 번역을 했습니다.

번역본은 底本:「太宰治全集3」ちくま文庫、筑摩書房1988(昭和63)年10月25日판입니다.

 

 

 

작품감상

이 작품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 오사무의 쇼와15년에 발표된 중기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다자이의 빚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친구인 작가 단 카즈오와 돈을 다써서 집세를 빌리려고 스승 이구세의 집으로 다자이가 갔다고 한다. 그런데 돈을 빌리러 간 다자이는 오지 않고 결국

 

이야, 이야 드디어 귀찮음을 극복하고 허접한 일본어를 가지고 달려라 메로스를 다 번역했습니다.

 

푸른문학시리즈에서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이 달려라 메로스라서 번역을 한 번 해볼까하고 도전했는데, 한자가 까막눈이라 한자 찾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더군요.

 

 

 

푸른문학 시리즈의 설명으로는

 

이 작품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 오사무의 쇼와15년에 발표된 중기 대표작입니다.

 

이 작품은 다자이의 빚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친구인 작가 단 카즈오와 돈을 다써서 집세를 빌리려고 스승 이구세의 집으로 다자이가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빌리러 간 다자이가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스승에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단이 다자이에게 화를 내자 '단군 기다리는 자가 힘들까, 기다리게 하는 자가 힘들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시기는 다자이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시기라고 하는데요.

 

스승 이구세에게 '저도 분명 좋은 작가가 되겠지요. 일을 하겠습니다. 놀지 않을 겁니다. 조금이라도 밝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라고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다고 합니다.